동시대의 컨템플레이터, 사유하는

강춘혁 작가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 

<월간 컨템플레이티브 4: 먹고사는 문제>


Fxxking Peaceㅣ캔버스에 수채화ㅣ사이즈: 75cm x 40cmㅣ©강춘혁 작가

🎙️Interview

<월간 컨템플레이티브>의 비전을 현실화하자면, 동시대를 사는 ‘컨템플레이터=사유하는 사람’들을 직, 간접적으로 연결하고자 함도 포함입니다. 자신의 것을 자신의 인생에 가득 담아 두고, 매 순간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누군가의 이야기가, 겉치레 없이, 온전히 전달되길 바랍니다.


오늘 우리는 ‘선을 넘어온 작가’ 강춘혁 님과 연결됩니다.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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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자유'를 찾아 선을 넘어 탈북한 강 작가는 비정상회담, 쇼미더머니, 노머니 노아트 등에서 때로는 탈북자 대표, 때로는 래퍼, 때로는 화가로 다양한 방송을 탄 유명인입니다. 많은 이들은 북한의 실상과 한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강 작가의 신념과 그에 대한 숙고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.



Q: 탈북을 결심하게 된 계기



A: 제가 98년도에 탈북했는데, 94년도부터 먹고살기 힘들어졌어요. 일단 밥이 밀가루 섞은 밥이 되고, 또 강냉이밥이 되고 죽이 되고... 그런 생활을 이어가다 저희 아버지가 먼저 97년도에 먼저 나가셨다가 돌아오시는 길에 잡히는 바람에 이제 이렇게 살다간 굶어 죽겠구나 싶었죠.



Q: 탈북 후 상황은 좀 괜찮아졌는지


A: 음...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. 먹고 사는 건 지장이 앖지만, 맨날 숨어다녀야 하니까... 그 당시에는 중국어도 할 줄 몰라서 인력으로 팔려 다니기도 하고 그냥 숨어다녔어요.



Q: 그런 상황이었다면 탈북 이후 더욱더 먹고사는 문제에 치중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예술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?



A: 옛날부터 생각했지만, 우리나라가 유일 분단국가잖아요? 근데 어느 새부터인지 사람들 속에서 그 사실이 많이 잊혀 가고, 관심이 줄어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. 한쪽에선 부유한 삶을 살고, 한쪽에선 가난한 삶이 지속되고, 또 그게 현실이고. 그러다 보니 저도 그런 사회에 살다가 넘어온 사람으로서 그림을 하나 그리더라도 '의미있는 그림'을 그려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.



Q: 나중에 지금보다 더 힘들어지더라도 이 일을 계속 할 것인지


A: 네. 저는 일단 분단이 허물어질 때까지 그림을 계속 그릴거예요. 물론 생전에 그날이 와야 하겠지만... 안 오면 뭐, 죽을 때까지 그리는 거죠. 이제는 제 '사명'이 된 것 같아요.



Q: 마지막으로 먹고사는 문제 앞 '선택의 기로'에 놓인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



A: 보통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포기한다고 하는데, 대부분 다 그렇지 않나요? 그거 또한 누군가의 '선택'이기에 제가 뭐라 할 순 없을 것 같아요. 저도 분단만 허물어지면 때려치우고 싶어요. 그래서 자연도 그리고 싶고, 꽃도 그리고 싶고, 이렇게 좀 아름다운 것도 그리고 싶어요. (웃음)


또 그것이 얼마나 힘든건지 알기 때문에 먹고사는 게 힘들지만,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선택한 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.


"잘하고 있어! (웃음) 언젠간 빛을 볼거야."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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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3년 9월 8일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선 어느 날의 ‘선을 넘어온 작가’ 강춘혁 님의 이야기였습니다.

(강춘혁 작가의 더 많은 이야기는 <월간 컨템플레이티브 4: 먹고사는 문제>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:)

정체성의 혼동ㅣ캔버스의 유채ㅣ사이즈: 145.5cm x 112.1cmㅣ©강춘혁 작가

동시대의 컨템플레이터, 사유하는
강춘혁 작가

        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

<월간 컨템플레이티브 4: 먹고사는 문제>

*Fxxking Peaceㅣ캔버스의 수채화ㅣ사이즈 75cm x 40cmㅣ©강춘혁작가

🎙️Interview


<월간 컨템플레이티브>의 비전을 현실화하자면, 동시대를 사는 ‘컨템플레이터=사유하는 사람’들을 직, 간접적으로 연결하고자 함도 포함입니다. 자신의 것을 자신의 인생에 가득 담아 두고, 매 순간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누군가의 이야기가, 겉치레 없이, 온전히 전달되길 바랍니다.


오늘 우리는 ‘선을 넘어온 작가’ 강춘혁 님과 연결됩니다.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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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자유'를 찾아 선을 넘어 탈북한 강 작가는 비정상회담, 쇼미더머니, 노머니 노아트 등에서 때로는 탈북자 대표, 때로는 래퍼, 때로는 화가로 다양한 방송을 탄 유명인입니다. 많은 이들은 북한의 실상과 한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강 작가의 '신념'과 그에 대한 '숙고'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.



Q: 탈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?



A: 제가 98년도에 탈북했는데, 94년도부터 먹고살기 힘들어졌어요. 일단 밥이 밀가루 섞은 밥이 되고, 또 강냉이밥이 되고 죽이 되고... 그런 생활을 이어가자 저희 아버지가 97년도에 먼저 나가셨다가 들어오시는 길에 잡히는 바람에 이제 이렇게 살다간 굶어 죽겠구나 싶었죠.



Q: 탈북 후 상황은 좀 괜찮아졌는지



A: 음...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. 먹고 사는 건 지장이 없지만, 맨날 숨어다녀야 하니까... 그 당시에는 중국어도 할 줄 몰라서 인력으로 팔려 다니기도 하고 그냥 숨어다녔어요.



Q: 그런 상황이었다면 탈북 이후 더욱더 먹고사는 문제에 치중할 수도 있었을텐데 예술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?



A: 옛날부터 생각했지만, 우리나라가 유일 분단국가잖아요? 근데 어느 새부터인지 사람들 속에서 그 사실이 많이 잊혀져 가고, 관심이 줄어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. 한쪽에선 부유한 삶을 살고, 한쪽에선 가난한 삶이 지속되고, 또 그게 현실이고. 그러다 보니 저도 그럼 사회에 살다가 넘어온 사람으로서 그림을 하나 그리더라도 '의미있는 그림'을 그려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.



Q: 나중에 지금보다 더 힘들어지더라도 이 일을 계속 할 것인지



A: 네. 저는 일단 분단이 허물어질 때까지 그림을 계속 그릴 거예요. 물론 생전에 그날이 와야 하겠지만... 안 오면 뭐, 죽을 때까지 그리는 거죠. 이제는 제 '사명'이 된 것 같아요.



Q: 마지막으로 먹고사는 문제 앞 '선택의 기로'에 놓인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?



A: 보통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포기한다고 하는데, 대부분 다 그러지 않나요? 그거 또한 누군가의 '선택'이기에 제가 뭐라 할 순 없을 것 같아요. 저도 분단만 허물어지면 때려치우고 싶어요. 그래서 자연도 그리고 싶고, 꽃도 그리고 싶고, 이렇게 좀 아름다운 것도 그리고 싶어요. (웃음)


또 그것이 얼마나 힘든건지 알기 때문에 먹고사는 게 힘들지만,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선택한 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해 주고 싶어요.


"잘하고 있어! (웃음) 언젠간 빛을 볼거야."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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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3년 9월 8일 여름과 가을의 경계의 선 어느 날의 '선을 넘어온' 강춘혁님의 이야기였습니다.


(강춘혁 작가의 더 많은 이야기는 <월간 컨템플레이티브 4: 먹고사는 문제>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:)

*정체성의 혼동ㅣ캔버스의 유채ㅣ사이즈 145.5cm x 112.1cmㅣ©강춘혁작가